風雨(풍우)

새가 일으킨 바람, 하늘의 빗방울을 부르는 전주곡

풍파(風波) 풍랑(風浪) 풍상(風霜)
먼저 닥친 바람 뒤 모진 고난 알려
미·중 갈등 폭풍이 부를 폭우 우려

 바람과 비를 일컫는 단어가 풍우(風雨)다.

 우선은 단순한 기상(氣象)의 지칭이다.

 기압의 차이로 인한 대기의 이동이 바람, 그 뒤를 곧잘 따르곤 하는 강수(降水)의 현상이다. 

 바람 風(풍)의 초기 글자꼴에는 새가 등장한다.

 기압의 차이로 인해 바람이 인다는 지식이 없었던 옛 사람에게는 새가 바람을 일으키는 존재로 비쳤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글자꼴의 ‘새’는 일반적인 짐승을 지칭하는 虫(충, 훼)으로 바뀌면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본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비를 지칭하는 雨(우)의 초기 글자꼴은 명료하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이 비는 단순한 물방울이 아니다.

 대지를 적시고, 사람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먹을거리에 수분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상의 일반적인 현상을 가리키는 한자에는 이 글자가 의미상 중요한 부수(部首)로 등장할 때가 많다.

 구름 雲(운), 눈 雪(설), 서리 霜(상) 등이 우선 대표적인 글자들이다.

 비와 직접 상관이 없는 지진의 震(진)에도 등장한다.
 
 바람은 그러나 비를 부르는 전조(前兆)로 여겨지는 경우가 한자 세계에서는 유독 많다.

 그래서 풍우(風雨)라고 적는 단어가 암시하는 이미지는 특별하다.

 그와 유사한 조어(造語)의 행렬을 보면 이 점을 느낄 수 있다.
 
 바람이 불러들이는 기상 현상은 여럿이다.

 우선 파도가 인다.

 풍파(風波)다.

이는 바람에 구름이 몰려들 때도 있다.

 풍운(風雲)이다.

 물의 출렁거림도 거세진다.

 풍랑(風浪)이다.

 찬바람에 추위가 곁들여지는 고된 삶은 풍상(風霜)이다.

 더 힘에 겨운 추위에 직면하면 풍한(風寒), 거기에 눈까지 겹치면 풍설(風雪)이다.
 
 먼저 닥치는 바람 뒤에 숨어 있는 무엇인가가 어둡다.

 고된 삶의 예고, 더 나아가 직접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질고 혹독한 조건의 강림(降臨)을 알리고 있다.

 따라서 ‘풍우’는 제 자신에게 닥칠 무엇인가에 대한 초조감과 불안이 섞여 있는 단어다.

비슷한 흐름의 위 조어들도 마찬가지다.
 
 전쟁과 재난이 빗발처럼 자주 닥쳤던 중국에서 만들어진 조어의 행렬이자, 위기에 대비하려는 초려(焦慮)의 문맥(文脈)이 아닐 수 없다.

 위기에 미리 대비하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의 나중 결과는 자명하다.  
 
 미국과 중국의 심각한 마찰의 폭풍이 우리경제에 곧 먹구름으로 번질 듯하다.

 우리는 그에 얼마만 한 초려를 품고 대비를 하고 있을까.

 심각하게 자문해야 할 때다. 

하영삼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장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