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우보윤 (一雨普潤)

 세상은 이처럼 어지러운데 어김없는 봄비에 대지가 깨어난다.

 김육(金堉)의 '희우(喜雨)' 시다.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좋은 비 시절 알아,

  初來葉上聞(초래엽상문)  내리자 잎에서 소리 들린다.

  九農成德業(구농성덕업)  농부들 덕업을 이뤄보려고,

  風處急紛紛(풍처급분분)  바람 속에 다급하게 몹시 바쁘네."

 두보의 시에서 한 구절씩 따와 엮은 연구시(聯句詩)다. 봄비 소리에 밖을 내다보니 들판에선 농부들의 농사 준비가 한창이다.

송상기(宋相琦·1657~1723)의 '희우' 시는 또 이렇다.

 "一犂時雨正霏霏(일리시우정비비)  쟁기질에 비가 마침 부슬부슬 내리니,

  甘澤方知造化機(감택방지조화기)  단비에 조화의 기미를 알겠구나.

  枯圃潤回蔬甲長(고포윤회소갑장)  메마른 밭 윤기 돌아 채소가 자라나고,

  旱田膏得麥人肥(한전고득맥인비)  가문 땅 기름져서 보리가 살지누나.

  村翁負耜顔爭破(촌옹부사안쟁파)  촌 노인네 쟁기 지고 다투어 활짝 웃고,

  野客看山意欲飛(야객간산의욕비)  들 나그네 산을 보자 마음이 날아갈 듯.

  却憶故園應更好(각억고원응경호)  옛 동산 생각자니 응당 더욱 좋겠지.

  釣臺春水滿前磯(조대춘수만전기)  낚시터 앞 봄물이 바위 앞에 넘실대리."

 채마밭에선 채소가 싹을 틔우고, 먼지만 풀풀 일던 마른 밭도 촉촉이 젖어, 보리가 이들이들하다.

 모처럼 생기가 돋고 살맛이 난다.

 봄비에 씻긴 산은 말쑥해서 내 마음도 정결해진다.

 한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중 '약초유품(藥草喩品)'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山川谿谷土地所生卉木(산천계곡토지소생훼목)  산천과 계곡과 땅에서 나는 초목과 숲,

  叢林及諸藥草(총림급제약초)  여러 가지 약초는

  種類若干(종류약간)  종류도 많아

  名色各異(명색각이)  이름과 모양이 저마다 다르다.

  密雲彌布(밀운미포)  자옥한 구름이 쫙 깔려

  遍覆三千大千世界(편복삼천대천세계)  삼천 대천세계를 뒤덮어

  一時等澍(일시등주)  일시에 단비를 기다려

  其澤普洽(기택보흡)  그 은택에 모두 젖는다.

  一雲所雨(일운소우)  똑같은 구름에서 내린 비지만,

  稱其種性而得生長(칭기종성이득생장)  그 종류와 성질에 따라 생장하여

  華菓敷實(화과부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雖一地所生(수일지소생)  비록 한 땅에서 난 것이고,

  一雨所潤(일우소윤)  같은 비에 젖었지만

  而諸草木(이제초목)  여러 초목은 저마다

  各有差別(각유차별)  차별이 있게 마련이다."

  비는 만물을 고르게 적신다

  一雨普潤(일우보윤).

 아무런 차별이 없다.

 하지만 초목은 똑같은 비에 젖고도 생장의 결과는 달라진다.

 놓인 상황이나 마음가짐에 따라 한 비에 젖고도 다른 결과를 낳는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