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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1-07 07:44

환상부환 (幻上復幻)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126  

    환상부환 (幻上復幻)

 

고 려 때 진정국사(眞靜國師) 천책(天頙)이 '호산록(湖山錄)'에서 말했다.


 "或經過市鄽(혹경과시전)  간혹 시장통을 지나다가

  見坐商行賈(견좌상행가)  좌상이나 행상을 보면,

  只以半通泉貨(지이반통천화)  그저 반 푼어치 동전을 가지고

  哆哆譁譁(치치화화)  와글와글 떠들면서

  罔爭市利(망쟁시리)   이끗을 붙들려고 다툰다.

  何異百千蚊蚋在一甕中(하이백천문예재일옹中 수많은 모기가 한 항아리 속에 있으면서

  啾啾亂鳴耶(추추란명야)  어지러이 앵앵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사람들은 한 끗 이익 앞에 수단 방법을 안 가린 채 사생단하고 싸운다.

 이런 말도 했다.


 "富兒生年不讀一字書(부아생년부독일자서)  부잣집 아이가 평생 글 한 자 안 읽고

  唯輕轎游俠是事(유경교유협시사)  그저 가벼운 가마에 올라타 유협(游俠)만 일삼는다.

  徒以月杖星毬(도이월장성구)  한갓 월장(月杖)과 성구(星毬)를 들고,

  金鞍玉勒(금안옥륵)  금 안장에 옥 굴레를 하고서

  三三五五(삼삼오오)  삼삼오오 무리 지어

  翺翔乎十字街頭(고상호십자가두)  십자로 어귀를 배회하며

  罔朝昏頟頟(망조혼액액)  아침저녁

  南來北去(남래북거)  남북으로 휘젓고 다닌다.

  觀者如堵(관자여도)  구경하는 사람이 담처럼 늘어섰다.

  惜也!(석야!)  애석하구나.

  吾與彼俱幻生於幻世(오여피구환생어환세)  나나 저나 모두 허깨비 세상에서 허깨비로 살고 있다.

  彼焉知將幻身乘幻馬馳幻路(피언지장환신승환마치환로)  저들이야 허깨비 몸뚱이가 허깨비 말을 타고 허깨비 길을 내달리면서

  工幻技令幻人觀幻事(공환기령환인관환사)  허깨비 재주를 잘 부려서 허깨비 사람들로 하여금 허깨비 일을 보게 하여,

  更於幻上幻復幻也(경어환상환복환야)  다시금 허깨비 위의 허깨비에 또 허깨비를 더하는 것인 줄을 어찌 알겠는가?

  由是出見紛譁(유시출견분화)  이 때문에 밖에 나갔다가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보노라면

  增忉怛耳(증도달이)  서글픔만 더할 뿐이다."


 월장과 성구는 격구(擊毬) 놀이를 할 때 필요한 작대기와 공이다.

 껍데기 인생들이 부귀를 뽐내고 권세를 으스대며 못하는 짓이 없다.

 사람들은 그게 또 부러워서 그들을 빙 둘러서서 선망한다.

 허응(虛應) 보우(普雨·1509~1565)는 대단한 승려였지만 요승(妖 僧)의 오명을 쓰고 죽었다.

 임종게(臨終偈)가 이렇다.


 "幻人來入幻人鄕(환인래입환인향)  허깨비 마을에 허깨비로 들어와서

  五十餘年作戱狂(오십여년작희광)  50여 년 동안에 미친 장난 지었구나.

  弄盡人間榮辱事(롱진인간영욕사)  인간 세상 영욕의 일 실컷 다 놀았으니,

  脫僧傀儡上蒼蒼(탈승괴뢰상창창)  꼭두각시 중 노릇 벗고 푸른 하늘 오르리."


 살짝 원망이 담겨 있다.

 미망(迷妄)을 벗어던져 진면목과 마주하기가 참 힘들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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