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곤돌라

서울시는 2025년 말까지 남산예장공원과 남산 정상을 잇는 곤돌라를 설치한다고 19일 밝혔다. 사진은 곤돌라 운행 조감도. 서울시 제공

​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1925년 남산 꼭대기에 조선신궁을 세웠다.

한국인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위해 1918년부터 남산 중턱의 수목을 베어내고 경성의 랜드마크로 신궁을 지은 것이다.

당시 경성 유람이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은 기차 타고 경성역(서울역)에 도착해 남대문을 구경한 후 신궁이 있는 남산에 올라 시내를 조망하곤 했다.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남산은 명소가 됐다.

<봄, 봄>을 쓴 작가 김유정(1908~1937)도 휘문고보 시절, 같은 반 친구인 월북 작가 안회남(1909~?)과 죽이 맞아 학교 수업을 종종 빼먹고 남산에 올라가 놀았다고 했다.

을사늑약 후 일제의 식민통치를 위한 한국통감부와 통감관저가 들어선 곳도 남산(예장동)이다.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한국통감부가 있었던 자리에 중앙정보부를 둬 장기 집권의 발판으로 활용했다.

​

남산은 현대사에서 어느 곳보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래도 남산이 서울의 랜드마크인 건 부정할 수 없다.

익숙해서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남산에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접근 경로도 많다.

보행도 있고, 순환버스나 케이블카를 타는 방법도 있다.

여기에 서울시가 하나를 더 추가하겠다고 한다.

서울시는 19일 남산 곤돌라를 2025년 말까지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을 허가하자 전국 지자체들이 들썩이고 있는데 서울 남산까지 가세한 것이다.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의 과거 재임 시절부터 곤돌라 설치를 고심했으나 막상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2008년과 2016년에도 추진됐지만, 환경단체 반대와 한양도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제와 얽혀 백지화됐다.

특정 업체의 운영 독점 논란이 일었던 케이블카는 곤돌라가 생겨도 그대로 운행한다고 한다.

남산을 이리저리 헤집고 설치될 곤돌라는 과연 시민이 합의할지도 모를 일이다.

​

손자병법에 교지불여졸속(巧遲不如拙速)이란 말이 나온다. 여기서 졸속은 서둘러서 결과나 성과가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를 말한다.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케이블카가 있는데 ‘친환경’을 내세워 곤돌라를 설치한다는 건 졸속·일방 행정 시비를 부를 수밖에 없다.

남산에 오를 방법은 이미 충분하다.

​

입력 : 2023.06.19 20:28

수정 : 2023.06.19 20:31

이명희 논설위원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