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백규(魏伯珪·1727~1798)의 ‘존재집(存齋集)’에 ‘연어(然語)’란 글이 있다.
매군(梅君), 즉 인격을 부여한 매화와 나눈 가상 대화록이다.
토막의 문답이 길게 이어졌는데, 대화 규칙은 누가 먼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대답은 ‘유(兪)’ 한 글자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兪)는 ‘네’라는 긍정의 대답이다.
말을 꺼낸 사람이 허튼 말을 하면 대화가 끝난다.
위백규가 말한다.
“生之路多者(생지로다자) 살길이 많은 자는 사는 것이
其生也死也(기생야사야) 죽을 맛이다.
君子之所以生者一而已(군자지소이생자일이이) 군자는 사는 이유가 한 가지일 뿐이어서
故其生也樂(고기생야낙) 사는 것이 즐겁다.”
“네.”
“自掩其非者(자엄기비자) 자신의 잘못을 덮어 가리는 자는
好摘人之細過(호적인지세과) 남의 작은 잘못 들추기를 좋아하고,
猜忮人善者(시기인선자) 남의 선함을 시기하는 자는
喜人面譽(희인면예) 남이 면전에서 칭찬하는 것을 기뻐한다.”
“네.”
“花不謝實不成(화부사실불성) 꽃이 시들지 않고는 열매가 맺히지 않고,
鹵不熬醎不成(로불오함부성) 소금은 볶지 않으면 짠맛이 나지 않는다.
是以求名者無實行(시이구명자무실행) 그래서 이름을 구하는 자는 알찬 행실이 없고,
恒逸者無成材(항일자무성재) 늘 편안한 자는 재목을 이루지 못한다.”
“네.”
“求諸人無厭者(구제인무염자) 남에게 끝없이 요구하는 자는
己不能與人者也(기부능여인자야) 이미 남에게 줄 수 없는 자이고,
欲人承奉不已者(욕인승봉불이자) 남이 끊임없이 떠받들어 주기를 바라는 자는
己不能事人者也(기부능사인자야) 이미 남을 섬길 수 없는 자이다.”
“네.”
이어지는 대화도 있다.
“子華曰: ‘今年霖雨苦矣(자화왈: ‘금년림우고의) 올해는 장마로 괴로웠습니다.”
梅君曰(매군왈): 매군(梅君)이 말했다.
‘吾因以養吾苔: ‘오인이양오태) “덕분에 제 몸에 이끼를 길렀습니다.”
子華笑(자화소) 내가 웃었다.
“子華曰: ‘天果何如(자화왈: ‘천과하여) 하늘은 어떤 존재입니까?”
梅君曰(매군왈) : 매군이 말했다.
‘春風吹矣(춘풍취의) “봄바람이 불면
吾芽(오아) 내가 싹트고,
陽氣復矣(양기복의) 양기가 회복되면
吾花(오화) 내가 꽃을 피웁니다.
人以是謂之天乎(인이시위지천호) 사람들은 이것을 하늘이라 합니까?”
“子華曰: ‘然’(자화왈: ‘연’) 네.”
가끔 규칙을 깨고 대답도 한다.
梅君曰(매군왈) 매군이 말했다.
“夜靜月明(야정월명) 밤은 고요하고 달빛이 밝은데,
淸風至矣(청풍지의) 맑은 바람이 불어옵니다.”
子華曰: ‘樂’(자화왈: ‘낙’) “즐겁군요.”
양명한 햇살 속, 꽃그늘 아래 앉아 매화와 이런 대화나 나누며 한봄을 건너갔으면 싶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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