飢飽雖殊困則均(기포수수곤칙균)  주리고 배부름이 고르지 않으나 어려움 있음은 같네.

貧富俱非吾所願(빈부구비오소원)  가난과 부자는 내가 원하는바 아니니

願爲不富不貧人(원위불부불빈인)  원하건대 부자도 가난도 아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네.

병연은 칠언절구(七言絶句)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시를 쓰고는 옆에 앉은 선비를 바라보았다.

그는 붓을 놓은 채 과거시험을 체념하고 멍하니 어두운 표정으로 허공만 바라보았다.

그는 별지에 쓴 시를 접어서 필낭에 넣고, 다 쓴 답안지를 동그랗게 말아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는 사이 한두 사람이 다 쓴 답안지를 들고 시관 앞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병연은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고 손에 쥐었던 답안지를 옆의 선비에게 던졌다.

이에 놀란 선비는 병연을 바라보았다.

"속히 답안지에 서명하고 제출하시오!"

"네?"

"빨리요!"

병연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힘주어 말하고, 서둘러 필낭을 메고 뒤쪽으로 걸어 나갔다.

수험생들 사이를 비집고 정원수가 있는 담장 가까이 가니 그곳에도 인파들이 웅성거렸고, 담장을 끼고 술을 파는 장사꾼들이 곳곳에 있어 과거를 치를 수 없는 유생들이 몰려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여기서 과거를 치를 수 없음이란, 힘 있는 양반들이 거벽, 사수, 선접꾼들을 데리고 들어와 시제가 보일만한 자리는 그자들이 넓게 차지하고, 힘없는 선비들은 뒷전에 밀려 시제가 보이지 않으니 시험을 포기한 자들이었다.

그중 나이든 한 선비는 술을 한 사발 들이켜고는

"이따위 불공정한 과거보려고 지금까지 과거공부 하느라 평생을 바쳤단 말인가!"

하며 불평을 호소했고, 이들을 통제하는 관노들은 뒤로 밀린 수많은 선비들의 분노에 제지는 커녕 슬슬 꽁무니를 뺀다.

병연은 시제가 앋득히 걸려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거기가 멀어 시제의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선접꾼에 밀려 뒷전으로 밀린 이자들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되는 곳이었다.

이미 앞쪽에선 다 쓴 답안지를 내느라 여기저기서 뛰어나가고 있었다.

이는 답안지를 먼저 내기 위함이었다.

선접꾼들은 거벽과 사수가 써놓은 답안지를 들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지정된 장소에 남보다 먼저 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어쩌면 시험장 출입문에 들어올 때처럼 똑같은 행동이 반복되었다.

병연은 그들의 행동에 이끌리어 사람들이 뜸한 옆을 돌아 앞쪽으로 다가갔다.

그들의 동작은 가관이었다.

몫이었다.

시험장에 들어올 때부터 대리시험 패들을 모아 난장판을 이루게 한 것도 힘 있는 양반들이고, 이로서 앞자리 차지도 그들이고, 이로서 앞자리 차지도 그들이고, 답안지를 먼저 내는 것도 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