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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1-02 05:17
임일순회장과 서오릉 트레킹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20  

임일순회장과 서오릉 트레킹

2021. 12. 31.(금요일)

 

신축년 납일(臘日)이다.

이틀 전 임일순 회장과 상암동 MBC 미디어지즈탈단지 역에서 만나 여자만 고막집체인점에서 벌교 살조개 비빕밥으로 만찬을 하고 헤어졌었다.

우리 둘만이 별식을 한 뒤여서 집사람들에게 미안하여 오늘 점심을 서오릉 앞에 있는 올갱이 해장국집에서 오찬을 하자고 제의했었다.

아침 일찍 임회장으로부터 오전 10시 반에 우리아파트로 오겠다고 하여 집사람과 함께 나아가 임회장 차로 서오릉으로 향하였다.

옛날 분료처리장이 있어 일년 내내 분료 타는 냄새와 함께 검은 재가 날리어 서울에서 가장 살기 힘든 곳으로 땅값이 제일 쌌던 곳이었으나 난지도의 개발과 함께 지금은 미디어디지탈 단지로 변모한 상암동이었다.

두 집안이 만나 수인사를 나누고 영하의 혹한에 서오릉에 도착하였다.

날씨가 춥다보니 항상 차량들로 만차를 이루던 주차장이 자리가 있어 임회장이 경로우대 첫 수회 기념을 찍어 서오릉에 입장하였다.

날씨가 춥다고 하지만 트레킹을 나온 시민들은 열심히 자기 몸 관리를 위해 산책하는 사람들로 서오릉의 인기를 실감하게 하였다.

먼저 대빈묘인 장희빈 묘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장희빈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이름은 옥정(玉貞)으로 전해진다.

아버지는 역관(譯官) 출신인 장형(張炯)이며,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친가와 외가 모두 역관 집안으로 매우 부유한 환경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부인 장응인(張應仁)과 외조부인 윤성립(尹誠立)은 모두 역관으로 벼슬이 정3품과 종4품에 이르렀으며, 당숙인 장현(張炫)은 숙종 때에 역관의 수장인 수역(首譯)을 지냈으며 거부(巨富)로 이름이 높았다.정확한 시기와 배경은 확인되지 않으나 어린 나이에 나인(內人)으로 뽑혀 입궁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희빈 장씨가 머리를 따 올릴 때부터궁중에 들어와 생활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파란만장했던 장희빈은 우리나라 사그의 한 장을 차지하는 인물로 회자되어 수없는 영화와 드라마를 연출하게 하는 여인이었다.

지금은 능도 아니요 다음으로 원도 못되는 대빈묘로 호칭되고 있으나 한때는 국모인 왕비도 되었고 경종의 어머니로 결국은 사약을 마시고 죽은 비운의 여인이 이곳에 자리하여 수많은 관광객의 눈길을 끌게 하는 곳으로 변해졌다.

희빈 장씨는 죽은 뒤에 광주(廣州) 진해촌(眞海村, 지금의 경기도 광주시 오

포읍)에 매장되었으나, 1969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의 서오릉(西五

) 경내의 대빈묘(大嬪墓)로 옮겨졌다.

아들인 경종(景宗, 재위 17201724)1722(경종 2) 생모인 희빈 장씨를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으로 추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