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공(陶工)의 망향가 이 선 민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하사미(波佐見)에서는 해마다 봄이 되면 '도조제(陶祖祭)'가 열린다.
인구 2만5000명인 하사미는 도자기 관련 업체가 530개나 있고 거기 종사하는 주민도 3000명을 넘는다.
마을을 수백 년 먹여 살린 도자기 기술을 전해준 도자기 시조(도조)는 임진왜란 때 조선 전라도에서 끌려온 이우경이다.
그는 도자기 원료가 나는 산골에 가마를 열어 이름난 도자기 '하사미야키(波佐見燒)'를 구워냈다.
나가사키에 이웃한 사가(佐賀)현 아리타(有田)는 대대로 일본 왕실에 식기와 다기(茶器)를 공급해 왔다.
이곳의 세계적 명품 도자기 '아리타야키(有田燒)'의 창시자 역시 임란 때 조선 충청도에서 납치된 이삼평이다.
아리타 사람들은 산 위에 커다란 '도조 이삼평 기념비'를 세우고 신사(神社)까지 만들어 그를 추앙하고 있다.
이삼평의 후예들은 대를 이어 지금도 도자기를 빚는다.
임진왜란을 일본 역사는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른다.
당시 일본 상류층에선 차 마시는 습관이 열풍처럼 유행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지시로 참전한 각지 영주들은 일본 도자기와는 비교할 수 없게 빼어난 조선 백자에 눈독을 들이고 앞다퉈 조선 도공(陶工)을 잡아갔다.
조선에서 가까운 일본 곳곳에 조선 백자 도요(陶窯)들이 만들어졌다.
교토국립박물관이 소장하던 일본 찻사발 한 점이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다는 소식이다.
야마구치(山口)현 하기(萩)에서 17세기에 만들어진 이 찻사발의 겉에는 '개가 멀리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한글이 적혀 있다고 한다.
임란 때 강제로 끌려간 조선 도공이 망향(望鄕)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글이다.
교토박물관에 이 유물을 기증했던 원래 소장자의 유족들은 "한일 교류에 도움이 되고자 한국으로 보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본 영주들은 선진문물 전수자인 조선 도공을 잘 대접했다.
그래도 도공들은 결국 돌아갈 수 없는 고국을 그리는 이방인이었다.
1990년대 중반 한국을 처음 찾은 13대 이삼평은 공주에 세워진 할아버지 이삼평의 비석 앞에서 하염없이 울고 난 뒤에야 고국에 대한 400년 한(恨)을 풀 수 있었다고 했다.
고향과 가족이 생각날 때면 그리움을 누르려고 도자기를 만드는 데 더욱 혼신의 힘을 기울였을 조선 도공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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