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연은 쉽사리 결단을 내여 말했다.

그러나 과거시험에 집착해서 결단을 내린것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안응수의 문객으로서의 결단이었다.

언제까지나 그의 집에서 편히 호의호식하면서 글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지 않은가.

시간이 흐를수록, 또한 글공부가 익어갈수록 문객이라는 집념에 빠지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과거시험장에 나가 겨루겠다고 말하고 나니 마음은 오히려 더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유학자이자 음운학자인 서파(西陂) 유희가 쓴 문통은 국어학, 경학, 음악, 천문학, 역사, 예술, 문학, 기술의학, 지리 등의 각 분야에 총망라하여 방대한 글로 저술한 글이다.

더욱이 한글을 독창적으로 연구하고, 훈민정음의 자모를 분류하여, 이를 그가 쓴 문통의 언문지(言文志)에 수록한 국어학 연구에 대한 글은 병연에게 새로운 배움을 주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훗날 언문 시에서도 병연에게 기초가 되었다.

오랜만에 우전(雨田) 정현덕(鄭顯德)이 글방으로 왔다.

그는 안응수 집과 먼 거리에 있어 가끔씩 오곤 하였다.

그도 이곳으로 올 때면 김병연을 만나기 위해 오는데, 서로 마주대하면 시문에 관해 의논했고 배웠다.

그러나 오늘만은 그의 표정이 달랐다.

그는 글방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금년 봄에 과거시험이 있습니다. 이미 거리엔 여러 곳에 방이 붙었더군요,"

"그렇지. 3년마다 오는 식년시가 있지."

"네 맞아요. 이제 열흘 남았어요."

우전은 시험날짜를 헤아리고 나서 병연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우전 정현덕은 지금까지 병연에게 선생님이라고 존대하며 불렀다.

그는 망설임 없이 병연을 바라보며,

"이번 과거시험엔 선생님이 나가셔야 합니다."

"내가 말인가?"

"맞소이다. 이번 식년시엔 이명 씨가 나가서 겨뤄야 합니다. 이명 씨는 능히 과거시험에 급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해장 신석우가 한마디 거들었다.

병연은 그의 말에 자신의 행로를 결정이나 한 듯 지금껏 함께해 온 사람들을 둘러보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배움은 부족하나 시험장에 나가 겨뤄보겠습니다."

"선생님. 잘 결정하셨습니다. 틀림없이 장원급제하실 겁니다."

"장원? 허어, 그날 과시장의 볼거리가 나에겐 더 큰 장원일걸세."

병연의 말에 우전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방에 있는 복경, 해장 사수도 얼굴표정이 굳어지며 아무 말이 없었다.

그들도 이미 과거시험장의 진기한 풍경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 과거에는 소과, 문과, 무과, 잡과의 네 종류가 있었고, 여기에 정기시(定期試)와 부정기시(不定期試)로 구분하여 과거시험을 보았다.

정기 시에는 3년에 한 번 열리는 식년시(式年試) 하나밖에 없었고, 부정기시에는 나라에 경사가 있을시 수시로 열리는 증광시(增廣試), 별시(別試), 정시(庭試) 등이 있다.

그 외의 명목으로 당하관을 위하여 실시한 시험인데 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당상 정2품의 품계를 올려 주는 중시(重試)가 있고, 왕이 몸소 보이던 과거로서 이는 최종의 시험으로 결과에 따라 갑. 을, 병으로 등급을 따라 정하는 전시(殿試)가 있었다.

이 외에 소과(小科)는 초시(初試)와 복시(覆試)로 생원과 진사를 뽑던 감시(監試)가 있었는데 이 모든 시험은 문사들에게 해당되는 시험이었고, 무과(武科)는 무인을 뽑던 과거시험으로 무예와 병서로 3년마다 식년으로 시행했다.

초시, 복시, 전시의 3단계로 된 이 시험은 각종 무술을 시험하였는데 최종 전시에 활을 쏘게 하여 그 중 3인을 뽑아 갑과에 급제시키고, 문과와 같이 첫째 무사를 장원랑(壯元郞), 둘째 무사를 방안랑(榜眼郞), 셋째 무사를 탐화랑(探花郞)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 시대는 양반을 위주로 한 과거시험이었기 때문에 문과와 무과는 양반집 자제들에게 한하여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어 중인이나 상인은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