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중인(中人)과 상인(常人)은 어떤 사람인가?

이 시대의 중인은 양반과 상인의 중간에 있는 계급이고, 상인은 양반도 중인도 아닌 그 이하의 보통 백성을 이르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잡과(雜科)가 있는데 이는 중인에게 보이는 과거시험이었다.

잡과에는 역과(譯科)로서 한학(중국어), 왜학(일본어), 몽학(몽고어), 여진학(만주어) 등을 뽑아 이들을 통역관으로 등용했다.

다음으로 의과(醫科), 음양과(陰陽科), 율과(律科) 등이 있었는데 초시와 복시로 뽑았다.

이들 잡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중인에게 해당되는 기술직의 미관말직으로 종사할 사람들이 가는 곳이었다.

과거와 달리 양반의 신분을 우대하여 공신이나 현직 당상관 상당의 친족이나 처족을 과거시험의 선발이 아닌 '음서(蔭敍)'라는 제도로서 관직에 출사케 했다.

이 음서제도는 날이 갈수록 과거보다는 음서로 출사하기를 선호하게 되어 선정과정에 부정비리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뿐이 아니었다.

과거시험에도 급제하지 못하고 음서제도로도 관직에 오르지 못한 양반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대가(代價)'라는 제도를 만들어 이들을 구제하여 관직에 출사케 했다.

이토록 문무를 겸한 과거에서부터 음서, 대가를 이용하여 소수 문벌가문의 권력을 잡고 있는 양반가의 관직 독점을 이루게 하는 일이 관행으로 자행됐다.

병연은 시험 당일 꼭두새벽인 축시(丑時:새벽2시)경 이웃집에서 개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그는 황초에 불을 켜고, 주인 노마님께서 잘 다듬어 준 명주 바지저고리를 주섬주섬 입고 방 한 편에 펴놓은 시험지를 두루마리로 말아서 필낭에 넣었다.

이 시험지는 천에다 화선지를 덧발라 붙인 것으로, 어제 글방 교우들이 준 시험지였다.

병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두루마기와 도포를 번갈아 보고는 두루마기를 내렸다.

많은 인파 속에 도포를 입으면 거추장스러워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쓰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툇마루로 나왔다.

툇마루에는 미투리와 당혜(唐鞋)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당혜는 과거시험을 보러갈 때 신고 가라고 우전이 가져다 놓은 신이였다.

병연은 교우들에게 제삼 고마움을 느꼈다.

조용히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집 앞 길가로 나오니 너 댓 명이 횃불을 들고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병연은 뒤질세라 잽싼 걸음으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들 일행 중 앞장선 젊은 두 사람은 한손에는 몽둥이를 들었고 한손에는 횃불을 들었는데 이들은 과거장 밖에 몰린 군중들을 밀치고 먼저 들어가려는 선접(先接)꾼이었다.

뒤 따라가는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거벽(巨擘)일 테고, 또 한 사람은 사수(寫手)일 터였다.

그들 맨 뒤에 큰 갓을 쓰고 오색 화려한 도포를 입고 죽을힘을 다해 헐떡이며 따라가는 자가 오늘 과거시험을 보는 자로서 높은 관직에 있는 자제일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 이들로 하여금 부정시험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선접꾼'은 과거시험장 밖에서부터 군중을 헤쳐 나가기 위해 몽둥이를 휘두르고 찌르며 길을 뚫고 먼저 들어가 좋은 자리를 잡아 주는 임무이고, '거벽'을 맡은 자는 학식이나 글 짓는 전문 기술이 매우 뛰어나 열심히 글을 짓는 사람이고, 그 중 한 사람은 '사수'로서 글씨를 잘 쓰는 자로서 거벽이 지어 놓은 글을 시험 답안지에 능숙한 명필로 옮겨 쓰는 사람이다.

정작 과거를 보는 당사자는 손 하나 까딱 않고 대리시험을 보게 한 후, 답안지를 다 쓰면 선접꾼이 답안지를 대신 내주는 역을 맡는다.

이들은 답안지를 들고 먼저 내려고 폭력을 써가며 군중을 뚫고 나아가 답안지를 제출한다.

이렇게 먼저 답안지를 내려고 폭력을 쓰는 이유는 수 만장의 답안지를 채점하는 검사관 몇 명이 며칠 안으로 채점하는 어려움 때문에 실제로는 글 앞부분만 보거나, 먼저 낸 순으로 수백 장만 채점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이쯤 되고 보면 조선후기의 과거시험은 지식 있는 일꾼을 뽑는 것이 아니라 소수 힘 있는 권세 가문들의 벼슬 독점을 위한 한마당이었던 것이다.

농학자 우하영(禹夏永,1741~1812)은 "과거철이 되면 한양과 시골에서 놀고먹는 잡된 무리들이 관광이라는 핑계를 대고 세력가의 수종이 되기를 자원해 부문(赴門), 쟁접(爭接)을 내세우는 노고와 공로로 삼는다."라고 과거시험의 폐단이 사실적이며 절박함을 기록했다.

병연은 집 앞에서 만난 무리들을 열심히 뒤따랐다.

그가 광통교에 다다를 무렵 창덕궁 후원 춘당대를 향해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 과거장으로 가는 행렬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