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지폐의 인물    (이 덕 일)

윤치호(尹致昊·1865∼1945)는 1881년 신사유람단 어윤중(魚允中)의 수행원으로 도일(渡日)해 1883년 4월까지 일본에 머무는데, 이때도 일기를 꾸준히 썼다.

'윤치호일기' 1882년 12월 5일(음력)자에는 '복택학교(福澤學校)에 가서 복택(福澤) 선생을 만났다'는 내용이 있는데, 복택은 일본의 최고액 지폐인 1만엔권의 수록 인물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이고, 학교는 그가 세운 게이오의숙(慶應義塾)이다.

 신사유람단 일행 중 유길준(兪吉濬)과 매부 유정수(柳正秀)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주선으로 게이오의숙에 유학한 것이 첫 해외 유학생 탄생이다.

유길준이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쓴 것도 후쿠자와의 서구 견문기 '서양사정(西洋事情)'에 영향받은 것이었다.

'학문의 권장' 첫머리에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며 평등주의를 주창한 후쿠자와는 조선과 청을 악우(惡友)라며 아시아와 단절하고 서구로 가자는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주창했던 모순된 인물이기도 했다.

5000엔권의 주인공은 도쿄여대를 설립한 교육자이자 농학가이고, '무사도(武士道)'의 저자이기도 한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1862~1933)였다가 2004년부터는 '섣달 그믐날' 등을 쓴 메이지시대 여성 작가 히구치 이치요(?口一葉·1872~1896)로 바뀌었다.

1000엔권은 일본의 근대소설가인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에서 2004년부터는 세계적인 세균학자였던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1876~1928)로 바뀌었다.

일본의 화폐 인물은 현재의 일본을 만든 근대 인물이 중심인 것이다.

중국 지폐는 마오쩌둥(毛澤東) 일색인데, 최근 민족·민권·민생주의라는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주창한 근대화 혁명가 쑨원(孫文)과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을 새로 넣자는 논의가 일각에서 일고 있다.

새 고액권에 신사임당과 김구가 선정되었지만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 두 인물뿐만 아니라 다른 지폐의 수록 인물들이 현재 사회에 맞는지도 재검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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