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ntact Us
    사랑방
    생활자료실
    한자 교실
    시 공부방
    역사정보교실
방문자
872
1,093
3,628
944,695
 
>> > 좋은 글방 > 사랑방
 
작성일 : 07-12-13 11:07

한국인 족보 신뢰성 높다.
 글쓴이 : 김광현
조회 : 2,530  
 

한국인 족보 신뢰성 높다




                    - 일본 도호쿠(東北)대 문화인류학연구실/시마 무스히코 교수(嶋陸奧彦)




우리나라가 부계 중심 사회로 전환된 것은 17세기 말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제사를 모시거나 재산을 상속하는 데 있어서 남녀의 차별이 없었다. 딸이 제사를 지냈을 뿐 아니라 외손도 친손과 함께 족보에 나란히 올랐다. 장자 상속 전통도 18세기 중반 이후에야 생긴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가부장제가 일반화된 시기는 우리의 긴 역사에서 300년 정도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일본인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역사학계에서는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지만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우리나라 씨족사회의 변화상을 꿰고 있는 일본인이 있다. 일본 도호쿠(東北)대 문화인류학연구실 시마 무스히코 교수(嶋陸奧彦-58)다.



시마 교수는 최근 17~19세기 대구지역 향촌부락 2,000여 가구 1만 여 명의 '족보'를 새로 만들었다. 이들의 호적과 족보를 조사, 컴퓨터 데이터베이스화한 뒤 가계도를 다시 만든 것이다. 이 방대한 작업을 통해 그는 우리나라 씨족사회가 17~19세기에 큰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호적대장에서 얻은 각 가계의 세보와 족보에 나타난 데이터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족보와 호적대장 일치" 결론


우리나라처럼 족보가 발달한 나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웬만한 집에서도 수 십 대에 이르는 조상의 계보를 기록한 족보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족보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런 상황에 시마 교수가 비록 17~19세기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족보의 정확성을 입증한 셈이다.



"족보 위조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든가 유명 성씨에 편입된 비율이 많다는 얘기는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자기 집안이 그렇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고, 증거도 찾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조사를 해 본 결과 일정지역에 토박이로 내려온 곳은 계보가 아주 정확하게 남아 있습니다. 호적대장에 나타난 가계와 족보가 거의 일치합니다. 적어도 식민지 시대 초기까지의 족보는 신뢰성이 있음을 말해주는 거지요."



조선시대에 족보 편찬이 활발하게 이뤄진 때는 16~17세기였다. 민간에서 족보다운 족보가 처음 나온 것이 15세기 말(1476년 인쇄된 [안동권씨성화보])로, 그 이전에는 거가대족(巨家大族)이라도 몇 세대가 지나면 조상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도 후대에 편찬된 많은 족보에 시조와 상대(上代)의 세계를 정연하고 구체적으로 기록한 경우가 많았다.



사학계에서는 이런 점 때문에 많은 족보에서 시조와 상대의 기록이 허위거나 과장-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족보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은 후대의 기록에서도 마찬가지로 제기 되고 있다. 16세기만 하더라도 성이 없는 사람이 전 인구의 약 40%를 차지했는데, 그 뒤 모두 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사회사를 전공한 정진영 동명정보대 교수(영상애니메이션학과)는 "성이 없던 천민층이 점차 성을 갖게 되었는데도 새로 나타난 성씨는 거의 없었다"며 "그 이유는 천민의 후손들이 새로운 성씨가 아니라 기존 유명 성씨를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40% 정도의 사람은 혈연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성씨의 족보에 이름을 올렸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친족사회 30년간 연구


시마 교수도 이런 주장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호적대장과 족보 등 여러 가지 씨족 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수십 차례 필드워크를 하고서도 구체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는 "명문가의 경우 17세기에 초간본이 만들어지고 18세기에는 대부분 족보를 갖게 됐다"며 "족보 위조는 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한국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도쿄대 재학 시절인 1969년 이즈미 세이치(泉靖一) 교수의 권유로 2주일간 한국 여행을 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일제시대 경성제대 교수로 재직했던 이즈미 교수가 한-일 국교정상화 후 한국을 다시 조사하기 위해 제자인 그를 미리 보낸 것이다. 그는 생애 첫 한국 여행에서 강한 느낌을 받고 우리 문화에 흥미를 품게 됐다.



"시골길에서 흰 한복을 입은 할머니들이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모습이 아주 조용하고 인상 깊었어요. 그 인연으로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중 필드워크를 위해 본격적으로 한국으로 나왔습니다. 그때가 1974년인데 전남 나주에 1년 동안 머물면서 농촌의 일상생활과 동네조직 등에 대해 조사했

지요. 그 과정에 씨족관계 행사나 가족제도, 집안관계, 문중 등 친족제도 일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겁니다."



그때부터 그는 매년 몇 차례 한국을 드나들며 필드워크를 했다. 그러니까 햇수로 30년 동안 우리나라 친족사회를 연구해온 셈이다. 그가 우리나라 친족사회에 흥미를 느낀 것은 일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에는 친족 개념이 삼촌 이내, 그것도 같이 살아야 뜻있는 관계로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사촌조차 먼 사이로 느껴질 정도로 친족 개념이 희박하다. 그러니 족보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다.



"한국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말하더군요. '일본 사람은 비둘기만도 못하다'고요. 사촌끼리 결혼하는 것을 빗댄 말이지요. 또 '개는 족보가 있는데 사람은 족보가 없다'고도 합니다. 저는 '맞는 말입니다'라고 웃습니다. 그만큼 한국과 일본의 친족 개념이 하늘과 땅 차이처럼 다른 겁니다."



시마 교수의 족보 연구는 국내 사학계의 연구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사학자가 아니라 문화인류학자로서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의 연구는 호적대장이나 족보를 분석해 그 시대의 사회상을 파악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 후손이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조사하는 것도 중요한 연구 영역이다. 예를 들면 30년

전 나주에서 필드워크를 할 때 하숙집 아들이 당시 그 마을에서 제일 젊은 사람이었는데 지금도 그렇다는 것이다.



"호적대장과 족보를 분석한 대구지역 후손들의 생활상이 크게 변화한 점도 인상적입니다. 대구시가 확대 되면서 친족사회에서 크게 문제된 것이 산소였습니다. 대부분 묘를 이장하는데 가깝게는 20~30㎞, 멀게는 합천까지 갑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마을을 중심으로 만나던 친족사회가 이제는 명절 때면 산소가 있는 지역

에서 만나는 형태로 바뀐 것이지요."



시마 교수는 한국에 나올 때마다 1~2주 동안 현장조사를 벌인다. 대구의 노점상과도 친하게 지낼 정도로 발로 뛰는 것이다. 어쩌면 그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친족사회의 마지막 증언자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이 게시물은 사무차장님에 의해 2008-02-19 15:18:2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양동 07-12-13 13:18
답변 삭제  
공감이 가며, 일본인 시마 교수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올려주신글 감사하며 앞으로도 많은 제언 부탁합니다
이름 패스워드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왼쪽의 글자를 입력하세요. 비밀글
 
 

Total 14,290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14290 白骨觀 김관동 01-13 28
14289 동물이 神이었다 김관동 01-06 53
14288 한국의 國運 김관동 12-10 138
14287 천후산(天吼山), 울산바위의 사연 총무이사 12-03 158
14286 죽설헌의 새소리 총무이사 11-25 177
14285 사자상 트럼프 김관동 11-11 177
14284 전쟁과 신탁 김관동 11-05 178
14283 돈의 메시지 김관동 10-28 196
14282 이 동네서 소설 자랑하지 마라 김관동 10-21 192
14281 군겁쟁재(群劫爭財)의 운 김관동 10-20 162
14280 '쩐교'와 數 총무이사 09-30 228
14279 남재희 추도사 김관동 09-23 196
14278 山羊 관상 김관동 09-21 195
14277 나의 생선탕 순례 ​ 김관동 09-10 241
14276 콩의 종주국 김관동 08-19 233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