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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9-07 09:46

친일 귀족들 땅에 조선인촌을 만든 정세권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60  

친일 귀족들 땅에 조선인촌을 만든 정세권

거기, 北村 골목길에 남은 거인의 발자국

서울 북촌한옥마을. ‘북촌5경’과 ‘6경’이 있는 북촌로11길 옆 골목 ‘북촌로11라길’이다. 골목 끝에 보이는 모퉁이부터 반대편 출구까지 10여m 도로는 1920년대 식민시대 친일귀족들이 대저택을 짓고 살던 이곳에 조선인 한옥마을을 건설한 정세권 명의로 남아 있다. 북촌은 물론 익선동과 삼청동에도 정세권 이름으로 등기된 토막난 땅들이 남아 있다. 일신 영달을 위해 나라를 외세에 넘긴 고관대작들 친일 행각 흔적도 물론 남아 있다. 이 사진은 정세권 손녀 정희선 작품이다.

수수께끼의 골목길

서울 북촌한옥마을에 가면 빽빽하게 들어선 한옥 처마들 틈으로 21세기 대도시 서울 전경과 1920년대, 1930년대 풍경이 두루 보인다.

마을에는 8경이 있다.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인파에 치여 걷기도 쉽지 않은 풍광지가 제5경과 6경이다.

옛 지번으로 가회동 31번지, 도로명주소로 북촌로11길 골목길이다.

남으로는 남산과 빌딩숲이 보이고 북으로는 양옆으로 즐비한 근대 도시한옥들이 가득하다.

그 언덕길을 오르다 길 끝 무렵 왼쪽으로 작은 ‘북촌로11라길’ 골목이 나온다.

이 골목 안쪽 10미터 정도 되는 공간 옛 주소는 ‘종로구 가회동 33-39′다.

지목은 도로. 면적은 열 평 정도.

등기부등본을 떼보면 이 땅이 현 소유자에게 매매된 때는 1935년 5월 10일이다.

정식 등기가 난 날은 1943년 5월 2일이다.

소유자 이름은 정세권(鄭世權)이다.

갑신정변 4년 뒤인 1888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1965년에 고성에서 죽은 사람이다.

소유자 주소는 종로구 낙원동 600. 탑골공원과 낙원상가 사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주소다.

이 사내는 누구인가.

왜 그가 죽고 57년이 지난 지금도 이 도로는 고성 사람 정세권 명의로 남아 있는가.

정세권은 바로 1920년대 이 북촌에 조선인 마을을 건설한 사람이다.

친일 귀족 몇몇이 나눠 가졌던 땅을 개발해 토굴에 살던 조선인들에게 집을 지어 판 사람이다.

오랜 기간 ‘조선왕조 500년 양반의 땅’으로 포장됐던 북촌, 실제로는 나라 팔아먹은 조선귀족들 대저택이 있었던 그리고 정세권이라는 거인(巨人)이 남긴 크고 깊은 발자국 이야기.

북촌11라길(가회동 33-39) 등기부. 1943년 정세권이 등기한 이래 2022년까지 주인이 바뀌지 않았다.

북촌 최초의 주인들, 그 귀족들

1890년대 북촌 사진을 보면 지금 한옥마을이 있는 언덕은 텅 비었다.

돌산이다.

아무도 살지 않았다.

가회동 골짜기 주변 평지에 사람들은 살았다.

고관대작들이 살았다.

멀리는 현 안국동 사거리 공예박물관 자리 안동별궁까지 평평한 곳에 살았다.

서운관이 있던 고갯길 남쪽에는 흥선대원군이 살았다.

서운관 고개에 있다고 해서 운현궁(雲峴宮)이었다.

18세기 후반 이 중에서 개혁을 꿈꾸던 박지원과 북학파들이 나왔고 갑신정변을 주도한 김옥균과 서재필도 있었다.

이 두 사람이 살던 집터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사람 살기 어려운 돌산 능선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대한제국 때였다.

이미 전주 이씨 종친과 순종비 윤씨 가문이 소유한 땅에 이들이 대저택을 짓고 살았다.

그리고 이곳에 대토지를 소유했던 고종비 민씨 가문이 저택을 지었다.

민영휘와 그 아들 민대식(가회동 31, 5447평), 완순군 이재완(가회동 30, 1237평)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갑신정변 때 고종이 잠시 피신했던 계동궁(계동 147, 2318평)은 완림군 이재원과 그 아들 이기용이 살았다.

(이해란, ‘서울시 북촌의 경관 변천에 관한 연구’,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9, 등)

1922년 총독부가 만든 경성지도에는 이들이 살던 북촌 영역에 이렇게 표기돼 있다.

‘민대식저(閔大植邸)’, ‘이재완저(李載完邸)’.

한 도시를 그린 지도에 집 한 채가 표시될 정도로 거대했다. 이 민대식과 이재완이 소유한 집이 현재 북촌한옥마을 대표적인 관광지로 변했다.

지도 북서쪽 삼청동 쪽을 보면 삼청동 146번지는 송병준 집이다.

3967평이다.

송병준 땅과 붙어 있는 145번지는 이완용 형 이윤용 집이다. 3241평이었다.

두 집 대지를 합치면 지금 대한민국 국무총리 관저와 얼추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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