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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13 18:17

내시구로 (來時舊路)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186  

    내시구로 (來時舊路)

 

 송나라 때 원거화(袁去華)의 '서학선(瑞鶴仙)'이란 작품이다.


 "郊原初過雨(교원초과우)  교외 들판 비 지난 뒤,

  見敗葉零亂(견패엽령란)  시든 잎 어지럽게,

  風定猶舞(풍정유무)  바람 잔데 춤을 춘다.

  斜陽挂深樹(사양괘심수)  지는 해 나무에 걸려,

  映濃愁淺黛(영농수천대)  근심겹게 고운 모습.

  遥山眉嫵(요산미무)  먼 산이 어여뻐도,

  來時舊路(래시구로)  올 적에는 예전 길로.

  尚巖花(상암화)  아직도 바위의 꽃,

  嬌黄半吐(교황반토)  어여쁜 황색 반쯤 폈네.

  到而今(도이금)  지금에 와서 보니,

  唯有溪邊流水(유유계변류수)  냇가엔 흐르는 물,

  見人如故(견인여고)  사람은 전과 같고."


 들판에 비가 지나가자 시든 잎이 진다.

 비가 개더니 석양이 걸렸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다.

 반쯤 핀 국화, 냇물 소리도, 세상과 사람도 그대론데 그것을 보는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추사 김정희의 글이다.

 "著書(저서)  책을 저술하는 것을

  古人多以看山論之(고인다이간산론지)  옛사람은 흔히 산을 보는 것에 견줘 논하였다.

  王秋樓題石邨詩卷末云(왕추루제석촌시권말운)  왕추루(王秋樓)가 '석촌시권(石邨詩卷)' 끝에다 이렇게 썼다.

  '上毘盧頂者(상비로정自)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

  無更進一步處(무경진일보처)  다시 한 걸음도 더 나아갈 곳이 없으면,

  則不得不從舊路下來.'(즉부득불종구로하래.')  예전 길을 따라 내려오는 수밖에 없다.'

  此言大有高格耳(차언대유고격이)  이 말은 대단히 높은 격조가 있다."


 이미 난 길을 따라 비로봉 정상에 올랐다.

 꼭대기에 마음을 둘 때는 앞만 보고 위만 보았다.

 꼭대기를 얻었으면 다시 내려와야 한다.

 글쓰기도 그렇다.

 심력을 쏟아 정점에 닿은 뒤엔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사이 듬직한 무언가가 내 안에 들어 있다.

 추사는 이 말이 퍽 좋았던 모양이다.

 이최상(李最相)의 편지를 받고 쓴 답장에서도 이렇게 썼다.


 "凡到泰山頂者(범도태산정자)  무릇 태산의 꼭대기에 오른 사람이

  無更進一步處(무경진일보처)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갈 곳이 없게 되면

  則不得不從舊路下來而已(즉부득부종구로하래이이)  어쩔 수 없이 옛길을 따라 내려올 뿐입니다.

  是今日留心文章者(시금일류심문장자)  이것은 오늘날 문장에 마음을 둔 사람에게

  所可明眼者(소가명안자)  눈을 밝게 해 줄 지점인데

  未知如何(미지여하)  어떨지 모르겠구려."


 좋은 글을 쓰고 싶은가.

 옛길을 따라 오르더라도 꼭대기에서 다시 내려와야 한다.

 내려놓고 자기화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높아 보여도 남 따라가지 않고 마침내 내 길을 가야 내 글이다.

 옛길을 따르되 새 길을 열자.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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